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문단 편집) === 출생과 본가 === ||[[파일:external/www.livius.org/marcus_aurelius_young.jpg]]|| ||어린 시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리스 철학자처럼 헌옷을 입고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는 것을 좋아해서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의 골머리를 썩혔는데, 그리스 문화 애호가로 유명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오히려 좋아했다고 한다.] || 121년 로마 제국에서도 부유하고 명망높기로 유명한 귀족 가문에서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와 '''도미티아 루킬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였으며 그의 부모는 모두 [[스페인|히스파니아]] 조상을 둔 히스파니아계 로마인이었다. 아울러 그는 할머니 루필리아 파우스티나를 통해 [[트라야누스]] 황제와 혈연적으로 친척이었는데, 트라야누스 황제는 마르쿠스의 할머니의 어머니의 외삼촌이었다. 다시 말하면, 마르쿠스의 할머니는 트라야누스의 누나 [[울피아 마르키아나]]가 낳은 [[살로니아 마티디아]]의 딸로 혈육이 많지 않은 트라야누스 황제의 몇 안 되는 친혈육 중 하나였다.[* 따라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할머니와 아버지를 통해 자연스레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와 친척이었고, 고모부는 안토니누스 피우스였기 때문에 남남끼리 양자 입적으로 제위계승을 뜬금없이 한 케이스가 전혀 아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안니우스 베루스 가문'''은 히스파니아에서 기원했다고 해도 좋을 가문이나, 본래 그 혈통적 기원은 포에니 전쟁 이후 히스파니아로 건너간 오래된 이탈리아의 평민 귀족 집안이다. 안니우스 베루스 가문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조부 시절에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왔는데, 이 당시 원로원 귀족을 대표했고, 사실상 본국 이탈리아를 본적으로 두고 있다고 해도 될 집안이었다. 그의 할아버지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는 3번이나 집정관을 연임한 사람으로 높은 덕망으로 유명했고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친구, 측근이자 인척이기도 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할머니는 루필리아 파우스티나이다. 그녀는 트라야누스의 외조카손녀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황후 [[비비아 사비나]]의 이부여동생였는데, 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제1차 삼두 정치를 이끈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와 [[카이사르]]의 아내 칼푸르니아의 친조카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의 직계 후손이라는 점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고모 대 파우스티나와 함께 자신들이 왕정, 초기 공화정 시절부터 내려온 로마 귀족의 아주 오래된 후손이라는 후광을 자랑스러워 했다. 마르쿠스의 아버지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는 안니우스 베루스와 루필리아 파우스티나 사이에서 태어난 3남매 중 둘째로 그의 누이는 [[대 파우스티나]], 동생은 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였다. 그는 법무관 재임 중인 124년에 요절했는데 2세기 당시 전형적인 명문가 귀족 출신답게 원로원 의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로마 근교에 벽돌공장을 가진 가문의 상속녀를 아내로 맞이했는데, 그녀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어머니 도미티아 루킬라였다. 마르쿠스의 고모 '''[[대 파우스티나]](안니아 갈레리아 파우스티나)'''는 부계는 갈리아지만 모계를 통해 이탈리아 귀족가문을 이은 [[안토니누스 피우스|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 안토니누스]]라는 젊은 원로원 의원과 결혼했다. 그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삼촌(숙부)인 '''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1세)'''는 자신의 형과 달리 아버지처럼 정규 집정관까지 지낸 거물급 인사였다. 마르쿠스의 사촌으로 안니우스 리보의 아들인 '''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2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작은아버지와 이름이 똑같았다.] 역시 161년에 집정관을 지냈다. 또 그는 친사촌 마르쿠스가 황제가 된 이후 루키우스 베루스를 중심으로 한 파르티아 전쟁 당시 수행단의 핵심인사 중 한 명이 되기도 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루키우스 베루스의 신임을 받았다. 이런 그의 본가는 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 2세의 아들 '''마르쿠스 안니우스 플라비우스 리보''' 시절에도 위세를 이어나갔는데, 마르쿠스의 5촌 조카가 되는 이 사람은 베루스 가문의 뿌리인 히스파니아에서 태어났지만 원로원 의원이었고, 204년 집정관을 지냈다. 1세기 중반부터 3세기 초까지 대단한 가문의 역사를 가진 안니우스 베루스 가문은 이탈리아에 터를 잡은 귀족가문임에도 히스파니아와 인연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본가는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히스파니아 일대에 엄청난 규모의 [[올리브]] 농장과 올리브 기름 정제 시설을 가지고 있었던 부유한 집안이었고 그 영향력은 이 일대에서도 꾸준했다고 한다. 3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요절했는데, 이때 할아버지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는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의 정치적, 법적 후견인이 되는 로마 귀족들의 관례에 따라 손자를 형식상 입양했다. 따라서 마르쿠스는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하드리아누스를 알현하면서 황제로부터 그의 총명함과 진리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명문가 귀족 자제다운 예의바름 등을 사랑받았다. 여러 번의 면담을 통해 당시 황제였던 하드리아누스는 어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친구의 손자를 '''안니우스 베리시무스(Annius Verissimus)'''[* 라틴어로 '진리를 좋아하는 안니우스'라는 뜻으로, '베리시무스(Verissimus)'라는 단어는 '진실한', '진지한'이라는 뜻의 'verus'의 최상급이었다.]’라고 부르며 자신의 친손자처럼 예뻐했다. 그래서 황제는 그가 6살이 되었을 당시, 훗날 양자이자 후계자로 삼게 되는 '''루키우스 케이오니우스 콤모두스(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카이사르)'''에게 어린 마르쿠스를 양자로 삼으라고 강요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